배려라는 이름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사랑이라는 붓으로 색을 칠하고,
행복이라는 결실을 위해 말없이 묵묵히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당신.
더 조금씩 서로를 안쓰러워 하고,서로를 위로하면서,
그 어느때 보다도 경제적으로 힘든 지금을 견디어 주는 당신.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더 해주지 못하는 내손이 부끄러워~
여보~ 세상에 태어나 내가 만난 가장 큰 행복, 그건 바로 당신이랍니다.
우리가족 지금처럼만, 행복은 더하고, 사랑은 곱하며
화목이라는 나무를 심고 , 정성으로 가꾸며,
사랑이라는 열매를 가득 채워 나가요~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부부간에도 같이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한쪽이 되면 그 소중 하고 귀함을 절실히 느낀다고 해~
우리 지금처럼만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존중하고, 양보하며, 살아가요~
가까우면서도 멀고, 멀면서도 가까운 사이가 부부라지요..
곁에 있어도 그리운 게 부부랍니다..
한 그릇에 밥을 비벼 먹고,같은 컵에 입을 대고 마셔도 괜찮은 게 부부라지요..
우리 언제까지나 둘이면서 하나이면 좋겠어!
우리사랑 하는 동안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사랑을 나누다가
''난 당신 만나 참 행복했소.'' 라고 말하며
둘이 함께 눈을 감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이런 애틋한 사랑 나누었으면 좋겠어~
보잘 것 없는 나를 그 누구보다 아껴주고 사랑해 줘서 고마워~
여보,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저는 저희 가족을 상담해주시는 상담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저희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하고부터 등교거부와 우울증으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병원을 다니고 상담을 병행했지만 정말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상태는 점점 심해졌고 계속 자퇴를 고집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지금의 상담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심각한 아이의 상태를 체크해 주시더니 그 때부터 어떻게 아이에게 상담을 하고 가족들 전체가 상담하기를 권유해 주셨어요
저도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울기보다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요
3월부터 계속 하던 등교거부를 10월이 되더니 더 이상 하지 않고 매일 방안에만 있던 아이가 방문을 열고 가족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역시 상담을 하고 있지만 상담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더 고생했다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고 있는 저희 상담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울지 않고 버틸 수 있고 희망을 갖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둘째형~~ 형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어! 현재 힘들더라도 힘을 내면 밝은 미래가 도래할거야^^ 저는 2004년 12월 뇌에 다발성 음성 종양이 생겼다는 진료 판정을 받고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종양이 커서 수술 시간이 13시간 정도 걸리고 그 종양이 신경 세포들을 건드려서 오른쪽 편 마비, 왼쪽 안면 마비라는 신체 상의 2급 장애인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수술 후 병원 침대에 꼼짝도 못하고 몇 개월 누워 있었는데 누워서 생각 드는 게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 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하루에 두서너 번도 더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뒤로 하게 한 건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이었습니다. 제가 딴 생각이라도 먹으면 어떻하나 하고 노심초사하면서 지극 정성으로 병 간호를 할 때를 볼 때마다 이왕 몸이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으로 재활에 전념해 보자는 생각이 강해져 신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수술 1년 후 퇴원을 해서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서울재활체육센터에 등록을 해서 하루에 5,6시간식 재활 운동에 전념 했습니다. 재활 운동한 보람이 있던 지 몸 상태라 든 지 정신 상태가 호전되어 인터넷도 가능하게 되어 인터넷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여러 영화 사이트를 알게 되었는데 그 사이트에서 시사회 이벤트에 응모해 서울 여기저기 영화관들 지하철을 이용해 도보 재활을 목적으로 시사회를 관람하곤 하였습니다. 시사회 관람하고 나서 관람한 영화 후기를 남기면 그 다음 시사회에 당첨 확율이 높다는 공지를 보고 원래는 오른손 잡이였는 데 오른쪽이 마비라 왼손을 활용할 생각에 컴퓨터 키보드를 일일이 한자 한자 쳐가면서 후기를 남겼습니다. 처음에는 인지 적인 사고나 왼손 타자라 익숙지 않아서 별 볼일 없는 후기가 지금은 숙달이 되어 능숙하지 않지만 그런대로 편안하게 쓸 수 있을 정도로 되었습니다. 그러던 터에 서울메트로에서 감동 소재를 바탕으로 하는 스토리텔링 공모를 주최한다는 공지를 보고 한번 공모해 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차 공모를 하였는데 운이 좋았던 가 아니면 제 글이 감동적이었던 가 몰라도 1위로 당선이 되었다는 전화 연락을 받고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이 한마디로 기쁨의 도가니였습니다. 이제는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삶의 희망이 한층 더 두터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남들은 사소한 것일지 모르지만 저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하고 소중한 보물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후로부터 제 블로그 https://blog.naver.com/fornest 에 감상하는 영화마다 리뷰를 포스팅하는 리뷰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9년 3월에 남아있던 양쪽 청신경초종이 커져서 수술과 방사선 시술로 인한 2차 왼쪽 안면 마비 후유증과 청각장애로 2020,1,2,3년에 이어 현재까지도 양한방 재활 치료와 재활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했으나 2차 안면 마비라 회복이 더디어서 저의 유일한 취미이자 생활의 터전인 리뷰 포스팅을 예전에 포스팅했던 리뷰조차도 다시 몇 편밖에 포스팅을 할 수가 없었는데 2025년에는 보다 열심히 재활에 전념해서 예전처럼 새로운 멋진 영화 리뷰를 포스팅하는 것이 소망이자 계획입니다^^ 아울러 저의 병 간호와 뒷바라지 문제로 다니던 직장을 그먄 두고 올해부터 새로운 직장에 근무하게 된 고생한 둘째형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예전에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
너도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 이 말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고 있어
자식 하나를 키우는 것도 참 버거워 하는데
자식을 넷이나 키우면서 엄마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고 말이야
그렇게 먼 거리에 사는 것도 아닌데
엄마를 챙기는게 왜 이리 힘이 드는지..
그러면서도 엄마는 내가 부를때면 당장 뛰어와서 도와주는데..
고마우면서도 죄송한 마음 가득이야
엄마, 첫째딸로 태어나 살림 밑천은 되지 못하고
잔병치레로 엄마를 늘 힘들게 하였는데
결혼한 지금도 늘 엄마에게 신세만 지는거 같아
무뚝뚝한 첫째딸이라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표현을 잘 못하는데
이제부터 잘 표현하도록 할께
엄마, 우리 4남매 곁에서 아빠 몫까지 오래 오래 효도 받으면서, 건강하게 살아요!
엄마, 늘 고맙고 사랑해요~♥
갑작스레 아이들의 아빠가 세상을 떠난지 올해로 3년... 그동안 중학생, 초등학생 아이들이 고등학교2학년, 중학교3학년이 되었구나.
아빠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줘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이런 엄마의 고민이 무색하게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마워.
각자 자기의 꿈을 키워가며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
큰 아들...웹툰작가가 될 거라며 각종 공모전에 도전하는 모습이 보기좋다...입상해서 상 타는 모습보니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생각도 들고..
막내...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긴 시간동안 학교생활, 대인관계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너의 꿈이 생겨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노력하고 밝아지는 모습을 보게 되서 너무 기뻤어. 그 노력의 결과가 결실을 맺어 너무 다행이고..
내년, 네가 원하는 그곳에서 네 꿈을 더 펼쳐나가며 자신감이 있고 밝은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래.
한 해, 한 해 잘 자라주고 있는 우리 아들들...올 해도 별 탈없이 잘 자라줘서 고맙고 사랑해.
기쁠때나 슬플때나 함께 기대며 살아온 남편께 감사하고 싶어요.
젊어서는 서로 다른 성향을 이해 못하고 옥신각신 하며 살아왔지만.....
나이가 이만큼 들고 보니 남편만큼 소중한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함께 늙어간다는 백년해로하며 더욱더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